국정신문

국정신문
사이트 내 전체검색


오피니언

[칼럼] 귀한 것을 오래 가지고 있으면 불길하다.

페이지 정보

국정일보기자 기자 작성일2020-09-21 13:41

본문

6f95e0e538aca90c9e9c4f31b20107e6_1600663364_9854.jpg 

문이주 기자 = 누구나 남들에게, 또는 자기 자신을 향하여 늘 잊지 않고 들려주는 가장 흔한 덕담 중 하나가 욕심을 버려라가 아닌가 싶다.

원래 사람의 본성은 선()이지만 악심이 늘 마음에 잠복해 있다가 한시도 쉬지 않고 그 출구를 찾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한 가르침이다.

욕심을 버린다는 말 속에는 너무 한 쪽으로 기울어 다른 소중한 것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경계의 뜻이 내포되어 있을 것이고, 매사에 절제를 동반해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성공한 사람들은 그 분야에 욕심이 많은 사람들이고,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목표를 세우고 열심히 매진한 사람들이다.

성공할 때 바로 그 욕심이 성공의 원동력으로 평가 받고 실패할 때 과욕이라고 비난 받을 수 있다.

춘추시대의 후반기에 이르렀을 때 패권다툼의 초점은 오나라와 월나라에 맞추어져 있다.

두 나라는 호시탐탐 서로를 엿보며 틈만 나면 서로 공격했다. 이 때 초나라에서 태어난 범려는 문종이라는 사람을 만나 절친한 친구가 되었다.

그 후 초나라 정계에 환멸을 느낀 그들은 함께 월나라로 갔다. 범려는 문종의 추천을 받아 대부가 되었고 월나라 왕 윤상에게 그 재능을 인정받았다.

윤상의 뒤를 이은 구천에게는 더욱 큰 신임을 받았다.

기원 전 497년 범려의 만류를 듣지 않고 무리하게 오나라를 공격했던 구천은 회계 산에서 대패하여 망국의 직전에 몰렸을 때 범려 자신과 월왕 구천은 오왕 부차의 노예가 되어 오나라에 남고 문종이 월나라를 관리하게 되었다.

오왕 부차는 자신을 위하여 대변 까지 찍어 먹어 보는 월왕 구천의 모습에 감동하여 오자서의 간절한 만류를 무시하고 구천을 월나라로 돌려보낸다.

범려도 구천과 함께 귀국하여 와신상담의 칼을 갈았다. 20년의 세월이 흐른 후 월나라가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마지막 패주가 되었다.

범려가 오나라에 있을 때 부차가 범려에게 월나라를 버리고 오나라로 오면 크게 중용하겠다고 유혹하자 망국의 신하는 정치를 입에 담을 수 없습니다. 신은 월왕을 제대로 보필하지 못한 죄인으로 다행히 죽음은 면했으니 그것으로 만족 합니다하며 사양하면서 구천과 함께 노비가 되었다.

승전 후 구천은 범려의 공을 인정하여 천하를 나누어 가지겠다고 말했으나 범려는 단호히 거절하고 사직서를 던졌다.

배를 타고 제나라로 온 범려는 이름을 치이자피(鴟夷子皮)로 바꾸고 해변 가에서 농사를 지어 수 만 금의 재산을 모았다.

이를 본 제나라 사람들은 그를 상국으로 삼고자 했으나 귀한 것을 오래 가지고 있으면 불길하다며 이를 사양하고 그 때 까지 모은 재산을 친지와 마을 사람들에게 다 나누어 준 다음 도망을 쳤다.

그가 다음으로 택한 곳은 천하 교역의 중심지인 지금 하남 성 정도현인 도() 지역이었다.

범려는 다시 이름을 도주공(陶朱公)으로 바꾸고 농사와 목축을 기반으로 상품 유통업에 종사하여 이윤이 1할을 넘지 않게 하여 큰돈을 벌었다.

그는 19년 동안 세 차례 천금의 재산을 모아서 두 번은 친구들과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부유한 군자로서의 덕행을 실천으로 보여 준 것이다.

나이가 든 후에는 사업을 자손들에게 물려주고 자신은 은퇴했으며 편안한 여생을 마쳤다.

공자(孔子) 또는 그의 제자라고 하면 학자 또는 도덕군자를 떠올리게 되지만 정치와 사업 경영에도 학문이나 예법에 못지않게 능력을 발휘한 공자의 제자로 자공(子貢)이라는 인물이 있다.

자공은 누구보다도 스승을 존경했고 그런 스승이 세상을 뜨자 자신의 재력을 동원해 장례비용을 비롯한 모든 절차와 일을 책임졌다. 또한 스승의 무덤에 나무를 심고 여묘를 지어 7년 동안 시묘살이를 했다.

탁월한 외교가이자 뛰어난 수완을 가진 사업가인 자공은 스승의 조국인 노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노나라, 제나라, 월나라, 오나라를 오가며 종횡무진 활약했다.

월왕 구천은 자공이 방문한다는 소식을 듣고 몸소 나와 길을 청소했으며 직접 수레를 몰아 그를 숙소로 안내하기 까지 했다.

이렇듯 자공은 당대 최고의 명사이자 문화 전도사인 스승을 앞세워 각국 군주들에게 스승을 자랑하고 소개하는 한 편, 이를 이용하여 이익을 챙기는 절묘한 사업 수완을 발휘한 것이다.

2,500년이란 세월을 뛰어넘는 확고한 자신만의 철학과 참신한 아이디어, 그리고 시세를 읽는 안목을 갖춘 사업 수완, 게다가 모은 재산을 어떻게 써야 하는 지 까지를 잘 보여 준 것이다.

 


국정신문

정기간행물등록 : 서울 아 01005 | 발행/편집인 : 국정일보 주식회사 권봉길 | 등록일자 : 2009년 10월 26일 | 최초발행일자 : 2009년 10월 26일
[02636] 서울시 동대문구 한천로 2길 107, 9층 (장안동, 형인타워) | 청소년보호책임자 :
대표(02)2216-0112 | 편집국 (02)2217-1137 | 광고국 (02)2217-1102 | Fax (02)2217-1138 | E-mail : news@kookjung.co.kr
Copyright © 국정신문. All rights reserved. Designed by HAZONE.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